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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프 베조스 그는 누구인가?

제프리 프레스턴 "제프" 베이조스는 미국의 기술 관련 기업가이자, 투자자이다. 아마존닷컴의 설립자이자 최고 경영자(CEO)로 잘 알려져 있다. 프린스턴 대학교를 졸업하고 1994년에 아마존닷컴을 설립하였다. 아마존에서는 처음에 인터넷 상거래를 통해 책을 판매하였으며, 이후에 넓고 다양한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1999년에 《타임》지의 올해의 인물에 선정되었다. 2000년 블루 오리진사를 설립하고 우주여행선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2013년 워싱턴포스트를 인수했다.

제프 베이조스는 1964년 1월 12일 미국 뉴멕시코주 엘버커키에서 덴마크계 미국인인 테드 조겐슨사이에서 태어났다. 제프의 출생 당시 테드는 18세, 재클린은 17세로 모두 고등학생이었다. 당연히 제프가 태어났을 당시의 성은 베이조스가 아니라 조겐슨(요르겐센)이었다 제프가 태어나기 전에 테드와 재클린은 결혼했으나, 17개월 뒤 이혼한다. 곧 재클린은 쿠바 출신 미겔 베이조스와 재혼하여 미겔은 제프의 새아버지가 되는데, 우리가 아는 베이조스라는 성은 그에게서 온 것이다. 미겔은 아무 밑천 없는 10대 쿠바계 미국인 이민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악착같이 노력하여 석유기업 엑슨에 입사하고 훗날 경영진에 오르는 등 제프 베이조스의 롤 모델이 되었다. 그는 제프 베이조스가 아마존을 설립할 때 첫 투자자가 되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각종 인터뷰에서 제프는 자신을 키워준 새아버지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존경을 드러낸 바 있다.

제프 베이조스에게 영향을 미친 또 다른 이는 외할아버지 프레스턴 자이스였다. 프레스턴 자이스는 젊은 시절 미국 국방부의 연구기관인 DARPA의 우주 공학 및 미사일 방어 시스템 분야의 전문가로 일했으며 원자력위원회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제프 베이조스는 16살이 될 때까지 매년 여름 방학을 텍사스에 있는 외할아버지의 농장에서 보내었는데, 이 때의 경험들이 기업가의 꿈을 키우는데 중요한 영양분이 되었다고 밝혔다. 외할아버지 농장

이후 그는 휴스턴의 리버 오크스 초등학교에 입학했는데 그곳에서 메인프레임 컴퓨터를 사용하면서 컴퓨터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컴퓨터 사용시간의 대부분을 친구들과 스타 트렉 게임을 하면서 보냈다고 한다. 한편으로는 초등학생 시절에 자기 방 출입문에 사이렌 경보장치를 달아서 동생들이 들어오면 알람이 켜지게 하는 등 아이디어와 기술에 뛰어난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 그의 초등학교 시절 선생님의 평가는 대단히 총명하나 리더의 자질은 없다는 것이었다. 고등학생 시절에는 플로리다 대학에서 주최한 과학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해서 실버기사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플로리다에 위치한 마이애미 팔메토 고등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한 베이조스는 물리학을 전공하기 위하여 프린스턴 대학교에 입학을 하게 된다. 그러나 양자역학을 배우면서 한계에 부딪히게 되는데.. 당시 반에 30명 정도 있었는데 그 중 학우 서너 명이 자신은 12시간을 걸려 이해하고 푼 문제를 아무 거리낌 없이 풀며 이해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물리학자가 되기를 포기했다. 프린스턴 일화 이후 컴퓨터 과학으로 전공을 바꾸고 학점 4.2/4.3 만점으로 졸업했다. 훗날 베이조스는 인터뷰에서 프린스턴 대학교는 자신이 훌륭한 물리학자가 될 수 없음을 알려준 동시에 컴퓨터 과학이 자신의 적성에 맞음을 가르쳐주었다고 밝혔다.

졸업 후 제프 베이조스는 유명 대기업인 인텔, AT&T의 벨 연구소, 앤더슨컨설팅의 오퍼를 거절하고 무명의 벤쳐기업 피텔에 입사하여 통신 프로토콜 프로그래밍 업무를 수행하였다. 그리고 그는 입사 1년 후 기술 및 사업개발담당 부책임자로 승진하였으나 입사 2년 후 퇴사한다. 제프 베이조스는 그 이후 뱅커스 트러스트에 컴퓨터 관리자로 입사했다. 그는 뱅커스 트러스트 입사 10개월 만에 회사 내 최연소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그 이후 제프 베이조스는 신생 금융사 D.E. Shaw로 옮겨 테크놀로지 기반 트레이딩 전략팀을 이끌기도 하고 인터넷 기반 사업 구상을 담당하기도 했다. D.E. Shaw 입사 1년 후 26세 최연소 부사장, 몇 해 후 수석 부사장이 된다. 그리고 그때 D. E. Shaw에서 같은 회사 연구원인 매킨지 터틀을 만나 1993년에 결혼했다.

그렇게 잘 나가던 그는 1994년 돌연 회사를 때려치우고 시애틀로 향했는데...


아마존 창업


1994년 7월 그는 회사를 때려치우고 시애틀로 출발하게 된다. 그의 동행은 아내와 인터넷 서점이라는 창업 아이템이었다. 그는 친척과 친구들에게 200만 달러의 창업자금을 투자받았는데 그 중에는 제프 베이조스의 아버지인 미겔 베이조스의 투자금도 있었다. 제프 베이조스는 자신의 아버지 미겔 베이조스에게 사업 성공 가능성을 30%라고 이야기한 후 아마존닷컴의 주식 58만 2528주를 팔아 10만 달러 상당의 자금을 확보했다고 한다.

그 이후 1995년 7월. 제프 베이조스는 시애틀 자신의 집 창고에서 3대의 워크스테이션을 가지고 아마존닷컴을 창업했다. 그리고 마침내 1995년 7월 16일에 사업을 개시한 아마존닷컴은 창업 일주일 만에 미국 전역과 전세계 45개 도시에 서적을 판매하기 시작했고 1996년 5월에는 월스트리트지가 Amazon.com을 일면에 대서 특필하기도 했다. 물품 없이 온라인 카탈로그만 존재하는 순수 전자상거래 업체로 출발한 아마존닷컴은 1997년 5월 주당 18달러에 상장됐고 이후 주당 2천 달러까지 상승했다. 
하지만 그렇게 잘 나가던 것도 잠시, 리먼 브라더스는 아마존닷컴이 일 년 안에 파산할 것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하게 된다. 이 보고서 발표 후 아마존닷컴은 1주일만에 주가가 19%나 급락혔다. 게다가 뒤이은 2001년 초 닷컴버블의 파장으로 자금 경색이 심화된 아마존닷컴은 최고 100달러였던 주가가 2002년에는 6달러로 추락할 정도의 경영 위기를 겪었다.

결국 아마존닷컴은 2001년 직원 1300명을 해고한 후 사업 다각화를 실시했는데, 우리가 아는 종합쇼핑몰 아마존닷컴이 바로 이 때 탄생한 것이다. 이렇게 닷컴 버블 붕괴와 경영 위기를 종합쇼핑몰 변신이라는 사업 다각화를 통해 타개한 제프 베이조스는 이후 e-book 단말기 킨들 시리즈와 킨들 파이어, 그리고 파이어폰 등의 제품과 클라우드 컴퓨팅 서비스를 계속해서 내놓으며 공격적으로 사업 확장을 하는 경영전략을 구사한다.

여담으로 아마존닷컴의 파산을 예상한 리먼 브라더스는 2008년 금융 위기로 직격탄을 맞고 파산했다. 아마존한테 예언했는데 사실 자신들한테 예언한 것이었다 반면 아마존닷컴은 확장에 확장을 거듭하면서 세계 최정상급 대기업으로 성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