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연방의 제2대 대통령이자 독재자.
1999년 12월 31일 총리 겸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취임한 이래 현재까지 장기집권 중인 러시아의 대통령이다. 명목상으로는 민주적 절차에 따른 자유선거를 통해 당선된 국가원수지만, 다수의 선거개입 및 조작 논란 등으로 인해 이전부터 사실상 독재자로 간주되었으며, 후술하겠지만 2020년 대통령 연임 제한 철폐 개헌까지 이르러 사실상 종신집권의 길을 열고 말았다. 통합 러시아당의 실질적 당수이기도 하다. 물론 통합 러시아의 법적 당수는 드미트리 메드베데프이지만, 사실 메드베데프가 당수인 이유는 당정분리를 준수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에 불과하며 이쪽도 실권은 푸틴이 장악하고 있다.
정식으로 연방 대통령을 맡은 뒤 3연임이 금지된 헌법을 무력화시키는 방안으로 당시 부총리였던 드미트리 메드베데프를 대통령에 앉혀놓고 자신은 총리로 자리를 옮겨 여전히 실권을 장악했고, 메드베데프의 임기가 끝난 다음 치러진 대선에서 다시 대통령으로 선출되었으며 메드베데프는 총리로 다시 옮겨갔다. 2016년 총선에서 사실상 그의 정당인 통합 러시아가 의석을 과반수 차지 함으로써 그의 영향력이 더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2018년 치러진 재선에도 성공해 2024년까지 임기예정이다.
또한 푸틴은 2013년~2016년까지 4년 연속 포브스 선정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2020년 4월 22일 개헌국민투표가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인해 연기되었지만, 얼마 후 투표에 이은 개헌안이 통과되어 2036년까지 집권이 가능해졌다. 푸틴의 나이를 고려하면 사실상 종신집권이나 다름이 없게 되었다.
자국에서 평가
지지율이 100%라고는 할 수 없고, 반발세력도 있는 것은 사실이나, 대체로 러시아인들의 푸틴에 대한 지지는 확고한 편이다. 푸틴의 지지 기반은 주로 국가주의자와 민족주의자들에 근거하고 있다. 러시아인들은 소련 붕괴 이후 초강대국의 지위를 잃었다는 상실감과 냉전에서 졌다는 패배감이 국가적 콤플렉스였다. 그렇기에 푸틴의 카리스마를 앞세운 권위주의적 행보와 호전적인 대외 정책은 열강으로의 복귀를 원하는 러시아인들의 욕구에 부합한다.
푸틴이 앞세우는 전통 문화의 부활과 보수주의, 러시아 제국의 범슬라브주의를 연상시키는 강경한 민족주의에도 러시아인들은 호의적이다. 이는 소련 붕괴 이후 아노미 상태가 된 러시아에서 중심 이념이 된 것이 민족주의와 정교회 신앙이기 때문이다. 즉, 푸틴의 행보는 소련의 영광을 꿈꾸는 유사스탈린주의자들과 우익 보수주의에 경도된 민족주의자들 모두에게 강한 호소력을 지닌다.
러시아계 유명인들도 푸틴에 대한 지지를 숨기지 않고 있다. 소련 시절에는 체제 비판자였던 알렉산드르 솔제니친과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도 정교회를 믿는 민족주의자로서 생애 마지막에는 푸틴을 지지하고 나섰다. 2015년 10월 8일, 비정상회담에서 러시아 대표로 출연한 바 있는 일리야 벨랴코프가 JTBC 썰전에 출연하여 푸틴에 대한 러시아 내의 인식과 평가를 전한 바 있다. 일리야는 주한 러시아 대사관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다.
일리야에 따르면 러시아 사람들도 90년대까지는 푸틴에 대해 잘 몰랐다고 한다. 그러다 1999년 옐친 전 대통령이 후계자로 지목하면서 알려졌다고 한다. 또 푸틴이 KGB 출신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호불호가 엇갈린다고 한다. 선거에 대해서는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굉장히 많다고 한다. 공식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기도 하고 러시아에서 푸틴을 대체할 후보, 푸틴의 강력한 지지기반과 견줄 후보가 없기 때문에 푸틴이 계속해서 높은 지지율로 당선되는 것이라고 한다.
인기 비결은 역시 경제. 구체적인 배경과는 별개로 대중이 보기엔 푸틴이 집권하는 순간부터 경제가 살아나고 생활 수준이 높아졌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상당수의 러시아인들은 푸틴이 '독재자가 아니다'라고 생각한다. '독재'가 아니라 미국의 프랭클린 D. 루스벨트나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처럼 민주적인 절차에 따라 장기집권하고 있는 정도로 생각한다고. 러시아인들은 북한이나 중국, 벨라루스, 타지키스탄과 같이 선거가 유명무실한 국가들은 명백한 독재국가이지만, 러시아는 러시아 유권자들이 푸틴과 통합 러시아를 선택한 민주주의 국가이며 "푸틴이 독재자면 그냥 헌법 무시하거나 개정해서 종신 대통령을 했지, 왜 굳이 드미트리 메드베데프가 대통령을 했겠느냐. 푸틴은 충분히 종신 대통령이 될 수 있었지만 헌법을 존중하기 위해 독재자가 되는 걸 스스로 거부했다."는 반론을 펼치며 푸틴이 형식적으로나마 민주주의를 존중하니 자국을 독재 국가라고 생각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푸틴에 대한 러시아 국민들의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생각을 쉽게 접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일리야의 발언은 러시아 국민들의 생각을 조금은 엿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러시아 내에서 푸틴의 평가는 대외적인 평가와 조금 다른 것을 볼 수 있다.
일리야 벨랴코프의 발언이 일리가 있는 측면이 있는 것이 2015년 10월에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푸틴에 대한 지지율이 사상 최고치인 89.9%를 기록했다. 특히 2014년 3월 크림 반도 병합 이후부터는 줄곧 80% 이상을 기록하고 있다. 이 사실을 보았을 때 러시아 국민들이 얼마나 푸틴을 절대적으로 지지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푸틴이 러시아 내에서 이렇게 높은 인기를 얻고 있는 요인에는 몇 가지가 있는데, 우선 러시아의 내적인 요인이 아니라 국제유가 변동에 의지하긴 했지만 푸틴이 오일머니로 충당한 재원을 이용해 옐친 시대의 사회적 혼란을 비교적 잘 수습했다는 점이 있다. 실제로 옐친 집권기에는 급진적인 경제개혁이 처참히 실패한 뒤 경제관료들이 회복을 위한 과도기라고 규정한 최악의 러시아 경기/사회붕괴가 이어졌는데 이때 정부 실세들의 비호를 받으며 부상한 신흥 재벌 올리가르히들이 사회 전반에서 무분별하게 활동하며 정경유착과 부정부패를 벌였다. 게다가 1996년 첫번째 체첸 전쟁에서도 사실상 패배에 가까운 모습을 보이면서 소련 시절의 위상은 온데간데 없어져 버렸다는 것을 대내외적으로 인증하고야 말았다. 이는 한때 미국과 나란히 냉전의 양 축을 구성하던 러시아 국민들에게는 어마어마한 상처로 다가왔다. 유고사변을 포함해 러시아에게 강대국다운 영향력이 증발했음을 확인시켜주는 일들이 점점 빈번해졌고 시간이 갈수록 러시아는 깊은 수렁으로 빠졌다.
2000년, 푸틴이 처음 집권한 뒤 전임자 옐친과 협력하던 올리가르히들이 후계자인 자신을 한참 깔보며 상공업상의 독자적인 재량권을 휘두르려 하자 이들과 전면전을 벌이게 된다. 푸틴은
1) 대통령이 가진 강력한 사정권.
2) 상트페테르부르크 시정활동 ~ 90년대 정계활동에서 형성된 우호적인 인맥, KGB/FSB의 선후배들, 친푸틴 올리가르히, 기타 여권인사들을 규합해 구성한 자신의 파벌.
3) FSB와 대통령궁에서 고위직으로 일하던 시기 수집한 옐친계 핵심인물 및 올리가르히들의 각종 비리정보.
를 이용해 상당수의 올리가르히들을 빠르게 제거하며 긍정적 이미지 구축에 애를 썼고, 막장화되었던 경제도 비록 석유와 천연가스 몰빵이라 단기 처방이긴 하지만 꽤나 끌어올리는 데 성공하여 나라를 구한 위인이라는 이미지를 갖게 되었다.
다만 여기서 기억해야할 건 푸틴 역시 90년대 중후반에 친옐친파 인사이자 옐친의 최측근으로 크렘린과 관청가에서 일하며 옐친이 나라를 파탄내는데 충실히 협조했다는 것이다. 이후 선거와 대통령 임기과정에서 과거의 이런 이미지를 지우는데 성공했지만 옐친의 측근으로 활동하며 출세가도를 달렸던 전적이 있는만큼 아예 남의 일인 것 마냥 책임을 부정할 수도 없다.
두 번째 요인으로는 러시아 내부의 독특한 정치배경에 있다. 먼저 러시아의 민주주의 도입은 급작스럽게 이루어졌다. 하루아침에 일어나보니 법적으로는 민주국가가 된 것이다. 그렇기에 민주주의에 대한 인식이나 이해도가 떨어진다. 특히 정치인들의 민주주의의 인식이 낮다. 국민의 민주주의 경험이야 후술하고, 여기서는 정치인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도를 이야기한다. 정치인들의 민주주의의 이해도가 정말로 낮은데 옐친조차 국정운영을 공산당식으로 운영했지 민주주의 제도로 운영하지 않았다. 푸틴의 영향이 커서 상대적으로 옐친이 부각되지 않는데 옐친조차 친위 쿠데타를 일으켰다. 그리고 야당의 인원 중에서 민주주의보다는 자본주의를 도입하되 독재에는 반대하는 식을 옹호할 뿐이지 우리가 생각하는 민주주의 도입이 아니라는 점을 주의해야 한다. 왜냐면 지금 정치인들의 상당수는 민주주의에 대한 경험도 인식도 부족하며, 그저 소련시절 당간부의 역할을 정치인의 역할로 판단하고 행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당이 선도하고 국민이 복속해야 한다는 소련 시절의 인식에서 그렇게 큰 차이가 없다. 대표적으로 넴초프도 독재의 견제를 목표로 활동했던 것이지, 민주주의 정착이 목적이 아니었다. 권위주의를 타파했기에 민주주의를 도입하려고 했다는데 흐루쇼프도 권위주의를 타파했으며 독재를 파괴했다. 권위주의 타파는 민주주의와 다른 개념이라는 것에 주의해야 한다. 야당들의 반 푸틴운동도 그저 흐루쇼프 시절처럼 권위주의와 독재를 타파하는 정도이지 민주주의의 도입이라는 거리가 멀다. 그나마 알렉세이 나발니의 경우 참여민주주의를 주장하는 등의 우리가 인식하는 민주주의적 입장을 도입하고자 주장하고 있으나 당연히 푸틴의 저격을 받고 있다. 이처럼 러시아 정치인들의 인식자체가 민주주의적이지 않기 때문에 야당의 주장도 사실 여당과 다를바 없으며, 기껏해야 차이는 독재에 대한 반대정도이다. 비교하자면 러시아에서의 야당에는 김영삼, 김대중같은 민주투사들이 없다는 점이다.
참고로 말하자면 소련 사회는 독재에 대해서 부정적이었다. 소련, 러시아에서의 독재 = 스탈린인데, 스탈린의 크고 아름다운 업적이 있어서 이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이 강하다. 실제로 흐루쇼프는 집권하자마자 했던 것이 스탈린에 격하운동이었다. 이를 기점으로 과거 스탈린식 독재체제를 개편하여 소련식의 집단지도체제를 마련했으며, 이는 절대로 서기장이 절대권력을 지니는 것이 아니다. 비록 이러한 업적이 후대의 브레즈네프에 의해서 삭제되었지만 흐루쇼프의 노력 덕분에 소련 사회에서 제2의 스탈린은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러시아의 사실상의 여당은 푸틴이 실세나 다름없는 통합 러시아이며, 러시아 연방 공산당, 러시아 자유민주당, 공정 러시아가 원내 야당으로 있다. 그런데 제1야당 공산당의 경우 독일 좌파당과 마찬가지로 과거 소련 공산당의 후신이고, 각종 극좌~중도좌파 파벌과 지지자들이 난립해 있으며 적어도 슬로건상으로는 소련으로의 회귀를 주장하고 있는 탓에 박스 지지율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제2야당 러시아 자유민주당의 경우 각종 범죄에 연루된 국수주의 민족주의와 대안우파들의 소굴이며 나름 여당과 협력하는 친푸틴 정당이다. 제3야당 공정 러시아는 통일된 당론이라는 것이 없어서 존재감이랄 것도 딱히 없으며 푸틴에 반대하는 분위기도 찾아보기 어렵다. 다시말해 원내에서 푸틴의 지휘하에 표면적으로 일치단결해 움직이는 거대여당(통합 러시아)의 상대인 주요야당들은 내부적으로 상당히 분열되있거나, 자체적인 단점이 크게 부각되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으며 공산당-자민당-정의러시아 모두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야당치고 상당히 푸틴에게 협조적이다. 원외정당에 몸담은 중도 좌/우익 성향의 유력후보들은 푸틴에 맞서다가 대부분 해외도피나 정계 은퇴를 선택하거나, 정치활동이 아예 동결되거나, 갑자기 암살당하거나 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또한 푸틴 정권은 1990년대 말 ~ 2000년대 초반에 처음 형성된 폭넓은 실로비키 인맥을 중심으로 정보기관(FSB, GRU, SVR 등)과 러시아 군부, 심지어는 람잔 카디로프 같이 마피아에 가까운 친정부 토호들의 확고한 지지를 받고 있으며 이들은 푸틴을 위해 선거는 물론 러시아 국내의 각종 정치현황에 깊게 관여하고 있다는 상당히 신빙성 높은 의혹을 받고있다. 투표조작, 경쟁후보 사보타주, 여당과의 유착, 폭력행사, 민간사찰 등 다양한 방법으로 반푸틴 세력을 견제하면서 푸틴에게 지원사격을 해주고 여기에 정언유착의 표본격인 친푸틴 언론 매체들이 명백히 편향된 보도를 내보내 푸틴의 지지율을 뒷받침해주는 식으로 푸틴정권을 계속해서 원조한다. 또한 선거국면에서 매번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러시아 국내외에서 공정성을 지탄받는 중앙선거위원회, 표적수사로 악명높은 러시아 사법당국은 정치적 중립과는 거리가 먼 조직들이다. 푸틴의 신뢰를 받으며 오랫동안 재산을 늘려온 친푸틴 올리가르히들도 러시아 정언유착 및 공공비리의 핵심적인 이해당사자들로, 정부로부터 막대한 이권사업을 따내고 특혜를 누리는 대신 홍보와 자금 제공 등으로 푸틴을 물심양면 지원한다. 무엇보다 러시아 시민사회에 지대한 영향력을 끼치는 러시아 정교회와 푸틴정권의 유착은 정도가 매우 심한 편인데, 푸틴은 정교회의 지속적인 지지를 보장받기 위해 장기간 재정분리의 기틀을 파괴시켜 친정부 교회의 영역을 넓히는데 열중했고 정교회는 푸틴을 지지하며 반서구 여론조장과 정치개입을 교회의 미덕으로 여기는 수준까지 퇴행했다. 즉, 러시아의 정치구조가 상당히 불공정하게 한쪽으로 기울어진 측면이 강하며 푸틴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정치판에서 어떤 대항마가 등장하던 유의미한 경쟁 자체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 이런 추세는 대부분 현재진행형이다.
때문에 무당층을 포함한 적잖은 러시아 유권자들은 아예 투표를 안 하거나, 사표를 감수하고 원외의 군소정당을 선택하거나, 조직력(통합 러시아)이 강하고 공적이 증명된 푸틴에게 투표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결국 푸틴이 지지층을 다지는 와중에 야권은 삽질만 거듭한 나머지 여야간의 격차는 더욱 더 벌어져 2015년 러시아 하원인 국가두마 의석 기준으로 여당인 통합 러시아와 제1야당 러시아 연방 공산당의 의석수는 무려 146석이나 벌어져 있다. 그야말로 독주 상태인 것이다.
마지막 요인으로는 러시아의 민주주의 경험 부재가 있다. 러시아는 대부분의 동유럽 국가들이 그랬듯 전통적으로 서구권에 비해 군주의 힘이 매우 강력한 전제국가였다. 서유럽에서는 귀족이나 부호, 지식인층이 나름대로 왕권을 견제했고 시민혁명, 노동계급의 부상이 내부에서 군주제를 지속적으로 개혁해 온 반면 러시아 제국은 근대 후반까지 전제군주인 차르와 소수의 귀족들의 힘이 비정상적으로 강한 국가였고 이로 인해 국민들도 군주에게 절대적으로 복종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 채로 너무 오랫동안 살아오다보니 민주주의라는 것을 늦게 받아들였고 실제로 러시아는 서유럽 국가 대부분이 입헌군주제와 민주주의를 도입한 19세기, 20세기 초반까지도 19세기 이전에 비해 차르가 일방적으로 정책을 결정하기 어려울 정도로 각료 대신들의 영향력이 크게 증가하긴 했으나 여전히 전제군주제로 남아 있었다. 사실 1825년에 데카브리스트 난(12월 당원의 난)으로 입헌군주제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나왔지만 처참히 묵살당하고 주동세력은 처형되었다. 1905년, 러일전쟁 패전과 함께 국민의 저항을 받은 니콜라이 2세가 입헌군주제를 수용해 1906년부터 1917년까지 10년이 조금 넘는 기간동안 혼합적인 입헌 군주제 국가였던 시기가 있긴 했다. 그러나 이 당시의 입헌군주제는 선거권의 제한이 심했던데다가 지주와 도시민, 농민, 노동자들이 각각 행사하는 표의 가치가 달랐다. 국회인 두마가 개설되긴 했지만 차르가 두마 해산권과 법률 거부권, 내외정의 실권을 가지고 있었기에 무늬만 입헌군주제였던 시기였던 셈. 그 후 러시아 제국이 붕괴된 이후에는 2월 혁명 정부가 수개월간 민주주의를 가동했으나 볼셰비키 혁명이 일어나 공산주의 국가인 소련이 건국되었다. 소련 초창기에는 소비에트(인민위원회)를 기반으로 하는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를 가동했으나 적백내전을 거치면서 반대파가 죄다 백군 편에 붙어버리거나 적군과 대립하는 관계에 서면서 사실상 일당제가 되어 버렸고, 적백내전 종료 직후에 레닌이 죽고 스탈린이 집권하면서 인민위원회는 스탈린이 장악한 공산당의 거수기로 전락하며 소비에트 민주주의는 완전히 압살되고 말았다. 스탈린 사후 정치적 자유가 상당부분 확대되었긴 하지만 그것이 소비에트 민주주의든 부르주아 대의민주주의든 '민주주의' 일반을 뜻하는 것은 아니었다.
결국 러시아 민주주의는 1990년대 초에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1950년대부터 지속적인 투쟁 끝에 6월 항쟁으로 1987년 민주주의가 자리잡은 대한민국보단 정도가 약하지만, 1950년대의 일부 산발적인 저항에서 시작해 1980년대 중후반 대규모 시민혁명으로 민주주의가 자리잡은 동유럽권 국가들과 비슷하게 러시아는 미하일 고르바초프의 종합적인 개혁 작업이 진행되던 중 8월 쿠데타가 발생했다가 범국민적 저항시위로 쿠데타가 저지되고 이후 시민들의 지지를 등에 업은 옐친의 우익파와 각종 급진 민주파가 소련 해체를 주도하며 풀뿌리 민주주의가 그럭저럭 햇빛을 보는 듯 했다. 그러나 러시아는 민주주의에 대한 준비가 전혀 없었고, 그나마 과거에 민주주의를 조금이나마 경험해본 극소수 동구권 국가들과 달리 이런 경험 자체가 전무한 탓에 대다수 러시아 국민들의 민주주의 의식도 미약할 수밖에 없었다. 서구식 민주주의의 열기는 옐친 정권의 초법적인 의회 탄압과 경제조치 실패에 따른 극심한 경제난, 극우 민족주의의 부상, 중도 좌/우익 정당들의 사분오열을 거치며 빠르게 사그라들었다. 그에 비해 유권자들의 회의론, 정치혐오는 폭증했고 게다가 자신을 자유의 투사로 둔갑시켰던 옐친이 집권 9년 동안 모든 분야에서 끔찍한 실수를 거듭하며 사회개혁과 민주주의에 대한 여론을 땅에 떨어뜨린 것도 한몫했다. 따라서 제정과 공산 독재가 전부였던 러시아인들에게는 민주주의가 생소했고 그나마 최악의 경제난 속에서 옐친이 민주주의를 적극적으로 망가뜨린 탓에 푸틴을 독재자로 인식하지 않는 편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반대파는 있지만 그의 평가를 바꾸거나 입지를 위협하거나 그를 대체할 수준은 못된다.